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루야 사토루 (문단 편집) === 1부 ===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수진이 빈약한 팀 사정 때문에 연습경기에서 딱 한 구를 던져 [[카타오카 텟신|카타오카 감독]]의 눈에 들어 일찌감치 1군에 선발되었다. 원래 에이스였던 [[탄바 코이치로]]가 부상을 당한 일과 겹쳐 지역예선에서는 한 경기 빼고 전부 [[선발 투수]]로 활약했다. 이때의 피칭 중 단연 백미는 여름 지역예선 결승전인 [[이나시로 실업 고교|이나시로]]전. 본인의 소속팀인 세이도 타선과 더불어 전국구에서 알아주는 강타선인 이나시로 타선을 4회까지 무려 삼진 5개를 뽑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낸다. 4회에 대한 묘사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정황상 삼진을 더 뽑았을 가능성이 높다.[* 심지어 이 5개는 [[나루미야 메이|나루미야]]를 제외한 1, 2, 3, 4, 6번에게서 뽑아낸 것이다. 나루미야는 3루 플라이로 잡아냈다.][* 루에만 나가면 노 리드로 거의 100% 도루를 성공시키는 쿠라모치와 톱스피드가 비슷한 1번 [[카미야 카를로스 토시키|카를로스]]와, 타력은 물론 각종 작전에 능한 2번 [[시라카와 카츠유키|시라카와]], 장타력이 있는 3번 요시자와, 폭넓은 미트력과 장타력으로 팀의 주포로 활약하는 부동의 4번이자 캡틴이며 안방마님인 하라다, 2부에서 이나시로의 클린업에 들어가는, 나루미야가 직접 뽑았다는 선수 중 한명인 6번 야마오카. 이들을 전부 삼진으로 잡은거다.][* 여담으로 전체적인 타선의 구도가 세이도와 거의 일치한다. 라이벌팀이라고 작가가 노린 듯.] 하지만 1회부터 체력 분배를 고려하지 않고 전력투구를 했기 때문에 구위가 처음처럼 나오지 않았고, 타선이 한 바퀴 돌고 어느정도 공이 눈에 익은 이나시로 타선에 결국 공략당하면서 4회에 역전을 내주고 만다.[* 사실 이 2타점도 막을 수 있었다. 4번 하라다의 적시타때 2루수인 [[코미나토 료스케]]의 평소 수비 범위를 고려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. 그러나 준결승 센센전 홈 충돌에서 입은 정강이 부상 때문에 제 속도를 낼 수 없었고, 결국 공이 빠진것이다. 직후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는 료스케의 표정을 보면 거의 확실. 그리고 이 부상은 끝까지 료스케의 발목을 잡고 만다.] 이후, 바로 탄바와 교체되어 좌익수로 들어간다. 그러나 다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일은 없었고, 경기는 마무리로 등판한 [[카와카미 노리후미]]가 불을 지르면서 통한의 역전 끝내기 패배로 끝나고, 세이도 고교는 6년만의 코시엔 진출에 실패한다. 이후 [[사와무라 에이준]]에게 "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. 다시는 마운드를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겠어. '''내가 이 팀의 [[에이스]]가 될거다'''."라며 정식으로 라이벌 선언을 한다. 장타력은 팀에서도 알아주며, 공식전에서 [[홈런]]을 때려 [[답내친]]을 시전하기도. [[나루미야 메이]]에게서도 2루타 포함 히트들을 뽑아냈다. 그런데 가을대회 본선에서는 타율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. ~~알게 모르게 [[병살타]]도 잘 치고~~ 연출상 한 번은 사토루가 터뜨릴 법한 대목에서도 끝까지 안 터진다. 그래도 워낙 장타력이 있는지라 벤치에서 놀리기엔 아까워서,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그대로 좌익수로 투입된다. 여름방학 연습경기부터 [[에이스|1번]]을 달고 [[클린업 트리오]]에 들면서 '투타의 핵'이 되었다.[* [[미유키 카즈야|미유키]] 세대가 졸업하면 후루야가 4번 타자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. 고교야구에서 에이스이자 4번은 별로 특이한 케이스도 아니다. 심지어 주장, 4번 타자, 에이스를 전부 하고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.] 세이도에서 믿을 수 있는 팀원들을 만나며 팀원들 간의 신뢰를 배웠고, 이 팀을 지게 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. 하지만 그 책임감 때문에 단 한 번이라도 얻어 맞아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자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. 연재 초반에는 [[볼질]](감독 왈 '독선적인 [[볼넷]]')로 대량 실점을 하는 것이 주요 패턴이었을 정도. 가을대회 1회전의 테이토 전에서 폭우로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을 때 긴장이 완전히 끊어져서 타석에서는 벤치의 사인을 안보고, 마운드에 올라가서는 볼질을 해대서 강판되고, 다음 시합에서도 그에 대해 반성하라는 의미로 투수로 세우지 않았다. 가을대회 준결승전에서는 마운드에 서서 야수들을 한 명씩 돌아보며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이 모습을 보고 그라운드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놀랐다. 이 시합에서 내면의 투쟁본능과 의지를 다 쏟아내는 등 한계 따위 진작에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며 [[에이스]]다운 존재감을 입증했다. 끈질긴 피칭에 팀메이트들이 진심으로 '대단하다'고 감탄할 정도였다. 그리고 할아버지로부터 '이제야 팀의 일원이 되었구나' 라는 말을 들었다. --팀에 융화되기까지 단행본 40권이 걸렸다.-- 가을 대회 16강 우구모리 전에서는 공식전 최장 이닝을 기록했다. 오랜 과제였던 힘을 뺀 투구를 선보이는 등 8회까지 접전을 펼쳤다. 그런데 이 힘을 뺀 투구가 5회에서 주루플레이 도중 입은 발목 부상 때문이었다.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오히려 상태를 점점 끌어올렸던 것. 결국 전치 2주 진단을 받아, 지역예선 경기 등판은 물론이고 투구연습까지 제한받는다. 이 상황에서도 부활동에 나와서 의자에 앉아 투구연습을 했다. 이 즈음 사토루를 감시하던 선배들이 '테이핑을 하면 외야수로는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.'라고 말하자, '왜 좀더 빨리 말해주지 않았냐'면서 아우라를 불태운다. 결국 오우야전에 나가지 못하고 관전. 이때 9이닝 완투를 하는 에이준을 보고 질투와 경쟁심이 섞인 살벌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다. 시합이 끝나고 관람석으로 이동하던 도중 한 노인과 마주치는데 그냥 멍하니 쳐다본다. --아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할아버지인데..-- 관람석에 앉아서야 팀원들에게 할아버지라고 밝혔다. 이 할아버지도 손자만큼이나 표정이 없으신 분이며, 코시엔 출전 경력이 있다. 후에 밝혀지지만 몇 번 세이도의 연습 경기에 손자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. 가을대회 기록은 6경기 21과 1/3 이닝 11실점 11자책점 평균 자책 4.64를 기록하였다. 1회전: 테이토 고교 - 선발 등판. 5와 1/3 이닝 소화. 1실점 1자책 2회전: 나나모리 고교 - 등판 없음. 3회전: 우구모리 고교 - 선발 등판. 8이닝 소화. 7실점 7자책(승리투수) 4회전: 오우야 고교 - 등판 없음. 5회전: 세이코 고교 - 선발 등판. 7이닝 소화. 3실점 3자책 6회전: [[야쿠시 고교]] - 9회 0아웃 등판(마무리). 1이닝 소화. 0실점 0자책(세이브) 1승 0패 1세이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